가계부채, 금리인하로 해결 안된다
가계부채, 금리인하로 해결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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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이 국내는 물론 해외로부터도 지적되기 시작한 가운데 12일 당국이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지난해 6월 금리를 0.25%p 올렸던 당국이 13개월 만에 동결기조를 깨고 0.25%p를 내린 것이다.

그만큼 10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정부가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판단을 한 셈이다. 정부로서는 현재의 가계부채 문제를 방치할 경우 금융시스템 자체에 타격이 가해질 우려가 커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당국의 기준금리 인하에 뒤따르는 시중은행들의 금리인하 작업도 빨라졌다. 빠르면 16일 쯤부터 주요 시중은행의 예금금리가 앞 다퉈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시장금리 연동형 대출상품들에 대한 금리 조정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일단 연동형 상품의 대출금리가 내려가는 것은 은행 빚을 지고 있는 적잖은 가계에 웬만큼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꾸준히 오르기만 하던 금리의 영향으로 고정금리 쪽을 택한 가계에는 별 보탬이 안 될 것으로 보이는데, 그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은행금리가 내려가면 그만큼 가계 빚 상환에 짓눌리다 끝내 채무불이행으로 넘어가게 되는 위험이 줄어들기는 하겠으나, 과연 금리 인하만으로 현재의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정부가 염려하는 것은 금융시스템이 받을 타격에 있을 뿐 부채를 지고 허덕이는 서민 가계의 고민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믿을 재료가 태부족하다. 오히려 금리인하에 부동산규제완화까지 옵션으로 내놓아 전체 가계부채 규모를 더 늘리는 쪽으로 끌고 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유달리 부동산 규제 완화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실상 금리 인하의 혜택은 부채규모가 큰 경우에 더 크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아파트 가격에 비례해 은행 대출이 발생했을 것이니, 결국 투기지역 대형 아파트 소유자들에게 금리인하의 혜택이 크게 돌아가게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부채로 인한 가계 위험도가 높은 쪽은 상대적으로 부채규모가 작은 쪽이다. 자산규모도, 소득도 적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부채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가계 위험도를 낮추는 방법을 금융정책 수단에서 찾기엔 한계가 있다. 금융정책 수단에 지나치게 의존하다보면 결국 외환위기 해결 과정에서 야기됐던 '카드대란'과 같은 엄청난 부작용이 초래될 가능성만 높아진다.

이제는 범정부 차원에서 그 이상의 정책 수단을 찾아내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정책 수단 차원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정부의 발상법부터 바꿔 개별 가계의 소득을 높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업 위주의 성장전략은 이미 한계에 이르렀다. 국민총생산이 얼마가 늘었느니, 1인당 국민소득이 얼마가 늘었느니 하는 총량적 성장수치는 이제 무의미한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한 두 개 기업의 실적이 국가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방식의 성장은 오늘날과 같은 심각한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 아무리 삼성전자가, 현대자동차가 수출을 늘리고 큰 수익을 낸다 한들 일자리는 더 늘지 않는다. 오히려 초대형 기업들이 블랙홀처럼 중소기업 영역을 잠식하고 개인 가계의 소득까지 빨아들이는 데 가속도를 붙여줄 뿐이다.

기업만이 성장을 견인한다는 개발경제 시절의 사고 틀에 붙들려 매어 있는 신자유주의자들로는 더 이상 복잡화한 국가경제를 해결해 나갈 수 없다. 지금 한국의 가계 위험도 증가 정도는 국가 거시경제의 토대 자체가 흔들리는 정도의 위험인데 그 단순한 발상의 틀을 깨지 않고 헤쳐 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일자리는 늘지 않고 조기퇴직자만 늘어나면서 동네 구석구석 느느니 자영업자들의 신장개업이다. 그 중 몇 %가 제 인건비나 건질 수 있을까. 그 끝은 서민들끼리 서로 뜯어먹고 살다 더욱 더 가난해져 가는 길 뿐이다.

일자리를 기업에만 기대하는 발상으로는 생활이 급해 늘어가는 가계부채 문제를 영영 해결할 방법이 없다. 차라리 정부 재정을 쓸데없는 토목사업 대신 국민 생활서비스, 복지로 돌려 그 속에서 무수히 요구되는 일자리를 창출해 나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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