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와 기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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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유럽발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올 상반기 한국의 외화 조달이 순조롭다며 일각에서 ‘어메이징 코리아뱅크’라는 용어까지 들먹이면서 호들갑이다. 세계 주요은행들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추세 속에 국내 은행들이 해외에서 발행하는 글로벌본드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그리스 위기가 일단 고비를 넘긴 듯싶지만 그 뒤를 잇는 스페인의 위기는 그리스에 비교되기 어려운 규모로 커질 위험성을 안고 있는데다 이탈리아도 여전한 화약고로 지목되고 있어 유럽을 넘어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게 이즈음의 불안한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은행권 글로벌본드 발행이 잇달아 성공하고 있으니 신바람이 날만도 하다.

일찍이 외환위기를 겪으며 호된 시련을 겪은 탓에 외화보유고를 높여놔서 금융위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처지가 된 것도 분명하다. 게다가 금융허브인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비하면 유럽은행에 대한 노출도가 높지 않아 유럽 여러 나라의 재정위기가 유로존 전체의 금융위기로 전화되더라도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다는 점이 현재 상황에서는 꽤 큰 장점이 되겠다.

그렇다고는 해도 새로운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세계적으로 경기가 가라앉으면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그로 인해 심대한 타격을 받을 위험성이 높다.

유럽 수출은 상대적 비중이 낮다지만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이 대규모의 부양책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서서히 경제성장률 하락에 대비하며 연착륙을 위해 조심스러운 정책을 지속하고 있는 중국이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한국경제도 덩달아 춤출 가능성이 높다.

미국도 더 이상의 양적 팽창정책을 조심스러워하고 있는 상태여서 역시 한국의 수출전략에 수정이 불가피해질 것이다. 미국은 단지 한국 기업 제품의 소비 감소만이 아니라 현재 애플과 삼성이 벌이는 지적재산권 분쟁과 같은 유형의 각종 분쟁을 촉발시켜 한국 기업들을 곤란한 지경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

모든 한국 기업이 삼성처럼 미국 기업들이 일으키는 분쟁에 맞서 싸울 힘을 가지지는 못 했다는 점을 한국 정부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단계다.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몇 개 기업을 제외하면 세계적인 기업들과의 분쟁을 제대로 치러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몰아주기 식 지원이 몰고 온 폐해를 이번에 닥쳐올 위기 속에서 절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초저금리 국가인 일본은 중앙은행 국채매입 프로그램까지 더해 통화정책의 조정여지가 많지 않겠고 그로인해 유럽발 위기로 엔화 가치가 더욱 올라가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도 엔화 가치 상승과 유럽수출 감소로 발생할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일본 시장을 지킬 패는 무엇이 있을까.

한국 정부도 현재의 위기를 비상체제로 돌파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금융에는 금융으로 맞서는 방식만으로 과연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다짐을 실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금 잇단 글로벌본드 발행 역시 금융적 해법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아닌지도 걱정스럽다.

이미 몇 년째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여러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한국은 통계상으로만 보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의 인플레이션은 국가적 통계보다 심각하게 다수 국민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카드 연체율 증가에서 볼 수 있듯이 저소득층의 삶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중산층의 삶에도 서서히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백화점에서 쓴 신용카드 액수가 올 1.4분기엔 감소세로 돌아섰고 사치업종의 카드사용액도 줄었다. 특히 유흥업소 카드사용액의 감소는 중산층의 지출억제라는 측면도 있지만 한국 기업환경의 특성으로 볼 때 기업, 그 중에서도 특히 중소기업 활동의 위축과도 연관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수출이 벽에 부딪칠 때 버틸 수 있는 힘은 내수에 있는데 아직 경제위기가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 내수가 줄고 있다면 무엇으로 닥쳐올 위기를 버틸 것인가. 아직 한국 정부는 그런 자각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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