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또 다른 수렁
한국경제의 또 다른 수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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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기가 침체기에 들 때마다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취약점으로 흔히 수출의존도가 지적되곤 한다. 수출 위주로 성장해온 한국경제의 체질이 크게 개선되지 못해 여전히 내수기반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OECD가 지적했듯이 유로존의 위기에 세계 경제가 타격을 받는 중에도 특히 내수 기반이 약한 한국은 더 큰 위험을 안고 있다. 수출시장이 휘청대면 내수시장까지 흔들리는 구조의 개선 필요성은 오랫동안 지적돼 왔지만 경제규모가 커지는 과정에서도 그에 상응할 만큼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IMF체제 이후 심화되던 양극화 현상이 더욱 가속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내수시장 구조를 더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양극화 현상은 5.16 이후의 빠른 경제성장을 위한 수단으로 선택됐고 그 후 구조적 변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탓이다.

참여정부에서 이런 양극화 심화를 막기 위한 부자증세가 시도되기는 했지만 국회의 여소야대 구조는 이런 시도를 무력화시켰고 그나마 참여정부의 마감과 함께 빠르게 원래 상태로 되돌려지고 있어 내수 기반을 강화할 기회가 날아갔다.

현재 한국의 양극화 심화 현상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를 보면 소득 상위 1%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대까지 7%대였던 것이 2000년대 들어 급증, 2010년에는 12%에 육박하는 수준이 됐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의 ‘한국의 소득집중도 추이와 국제비교’ 자료를 인용한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1995년 한국 사회 상위 1%의 소득은 전체 소득의 7.22%였다. 그러나 2010년에는 11.50%로 높아졌다.

물론 이런 상위 1%의 소득 비중은 미국, 영국, 캐나다에 비하면 아직 낮다. 미국 17.7%, 영국 14.3%, 캐나다 13.3%로 한국은 일본(9.2%)이나 오스트레일리아(8.8%)를 앞지르며 미국식 경제를 추종해가고 있다. 미국을 교과서로 여기며 따라 배우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 그룹들에게 이것은 차라리 반가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소득이 없는 곳에 소비가 일어날 수 있을까. 물론 빚을 늘려 가면 소비가 늘 수야 있겠지만 OECD가 이번에 지적했듯이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게 한국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합당한 처방이 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그게 아니더라도 IMF체제에서 경기부양책으로 권장됐던 신용거래 확대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체험한지 불과 10년도 안되지 않았는가.

2010년 기준 상위 1%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은 1억9500만원이었다. 이들은 근로소득이 절반을 조금 넘는 57.4%에 그친 반명 사업`부동산 소득(29.7%), 배당소득(9.4%), 이자소득(2.8%) 등이 나머지를 채웠다. 근로소득 이외의 부분은 직접적인 부의 승계가 가능한 부분이어서 이 부분의 비중이 클수록 양극화는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한국사회가 지금 외발 자전거로 레일 위를 달리는 모양새다.

물론 양극화 현상이 단기간에는 더 높은 경제적 효율을 보여줄 수도 있다. 70, 80년대의 계획경제기간 동안 그 효용은 익히 증명됐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이미 70년대 후반 무렵부터 서서히 방향선회가 필요했지만 일단 성장의 맛에 길들여진 정부나 사회가 그 맛에서 헤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정교한 정책을 실현할 민주적 경험이 부족했던 군사정부는 군을 기반으로 한 공포정치로 그 부족함을 메웠으나 이후 민간정부 들어서는 그 군의 힘 대신 이미 커져버린 자본의 힘으로 여론을 만들어가며 성장 과실에 취한 대중들을 이끌고 있다. 그 결과가 경제대통령의 출현이었다. 잘 살게 되기를 열망한 대중의 선택에 대중이 스스로 배신당하는 경험을 했다.

이제는 서서히 그 미망에서 깨어날 때가 됐다. 하지만 이미 중독된 성장의 맛을 이 사회도, 소외당하면서도 미련을 버릴 수 없는 서민 대중도 모두가 쉽게 떨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들의 선택이 매순간 옳은 것은 아닌 이유다. 그래도 길게 보면 역사시대 이래로 인류는 굴곡을 겪으면서도 조금씩 평등을 향해 전진했다. 그런 흐름에 뒤쳐진 국가와 민족은 사라져 갔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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