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는 주인이 없다?
은행에는 주인이 없다?
  • 홍승희
  • 승인 2003.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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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0년대 초 금융기관들이 무더기 인가될 당시 재무부 관리들 중에는 은행이 주인이 없어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산업자본의 은행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의 기본 입장은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는 국가 기간금융으로서의 은행을 재벌 사금고화하게 된다며 반대하는 것이지만.

요즘은 산업자본의 은행 지배를 또다른 논리로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금융시장 개방으로 해외 금융자본들이 국내 기간금융을 장악해 가는데 국내 산업자본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자본과 국외 자본을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불만스러운 이들에게는 상당히 먹혀드는 논리임이 분명하다. 국내 산업이 외국자본에 점령당한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제법 어필하는 논리다.

그렇다면 진정한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요즘 재벌 2, 3세들의 증여세 논란이나 지배권 장악을 위한 각종 편법 상속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들이야말로 명실상부한 기업의 주인이며 기업과 그 주인인 재벌들은 동일시되고 있다. 오죽하면 회장 아들에 대한 증여세 과세에 기업이 직접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말을 아무 거리낌없이 하겠는가.

최근 삼성이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등에 대한 국세청의 증여세 과세와 이에 대해 국세심판원이 타당하다고 결론내린 것과 관련,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소식이 그 대표적 사례에 속한다.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그건 이건희 회장 부자의 사적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지 기업인 삼성이 나설 일은 아니며 그 부분에 대한 논평조차도 적절한 것은 아니다.

대주주 가계의 상속이나 증여는 분명 기업 경영과 직접 관련되는 부분이 아니다. 단지 재벌가 내부의 문제여야 한다. 그런데 당연한 듯 재벌이 지배하는 기업이 상속세, 증여세 문제에 소송제기 운운하고 나선다.

현재 국내에서 기업의 주인이란 실상은 이렇다. 그 모습을 좀 더 적나라하게 묘사하자면 기업 종사자들은 단지 그들 지배재벌 개인에게 고용된 머슴같은 관계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게 과연 기업경쟁력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일인지 궁금하다. 한사람의 절대권력자와 그에게 지배돼 절대 복종하는 다수의 조직이 과연 얼마나 창의적인 조직이 될 것인가. 인해전술을 구사해서 영토를 점령하는 전투의 시대는 지났다. 이 시대는 노예적 다수보다 비록 소수일망정 창의적 개인들을 절대적으로 요구한다. 한국사회의 국제적 지위가 한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라도 창의적 개인들의 역할이 보다 더 증대돼야 한다.

‘주인있는 기업’의 필요를 주장하는 이들은 책임있는 경영자의 소신에 찬 결정과 실행의 유효성을 얘기한다. 물론 책임있는 경영인이 자신있게 경영적 판단을 밀어부치는 돌격형 경영이 유효한 시점이 있다. 그런데 그게 꼭 소유지배를 통해서만 이루어져야 하는가.

다른 나라에서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다고 기업이 무너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발전하고 있는데 왜 유독 한국에서만 소유와 경영이 일체가 돼야 한다고 믿는가. 물론 과거 기아차의 경우처럼 소유권 분배가 매우 잘된 기업에서 전문경영인이라고 세워놨더니 호랑이없는 굴의 여우처럼 또다른 형태의 전횡하는 지배자로 자리를 틀어잡은 나쁜 선례도 있긴 하다.

그러나 국민은행처럼 요즘 왕성하게 공격경영을 하는 곳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물론 국민은행을 두고도 이런저런 말들이 안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어느 특정지배자의 눈치를 보는 그런 경영행태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대주주들도 그야말로 주주로서의 권리행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안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업과 그 구성원들을 개인 심부름꾼으로 전락시키지는 않고 있다는 얘기다.

요즘 은행들이 임원인사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런 행태가 꼭 누가 눈치를 줘서 그럴까. 정권교체기에 누가 나서서 어느 쪽 눈치를 보며 압력을 행사한다고 봐야 할까. 중요한 것은 여러 주주들이 그 주권에 합당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되 결코 월권을 할 수 없는 제도적 장치가 현재로서도 결코 부족한 것은 아니라는데 있다. 다만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실체도 확인할 수 없는 유령이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을 배회하고 있을 뿐이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종종 물리력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주주 권리 위에 군림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주주 이외의 무엇을 눈치봐야 한다면 그건 제도의 문제라기 보다는 오히려 습관적인 눈치보기라고 해석해야 옳지 않은가. 물론 과거의 유산으로 비합법적 관행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고 그러다보니 ‘법대로’ 하는 일조차 약점잡기처럼 비쳐지는 현실적 한계는 존재한다. 아직은 한국이 정부의 적법한 행위가 정치적 압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사회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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