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꺼림칙한' 만장일치 주총
[기자수첩] '꺼림칙한' 만장일치 주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파이낸스 이종용기자] #) "주주 OOO입니다. 하나금융을 발전시키고 주주가치를 높여온 퇴임 사내이사에 대한 특별 공로금 지급은 그분들의 공로에 비해 과도하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본 주주는 사외이사에 대해서도 법정퇴직금 수준에 준하는 퇴직금을 지급하자는 동의안에 대해서 정식으로 제청하는 바입니다" "제청합니다(합창)" "주주여러분의 동의한 안건에 대해 이의가 없습니까" "이의없습니다(합창)"

금융지주사와 시중은행들의 주주총회 시즌이 시작됐다. 이번 주총에서는 특히 사내이사 퇴직연금제도, 문제 사외이사 선임 등 논란거리가 될 소지가 있는 안건들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사내이사의 퇴직금 제도 도입은 퇴임하는 김승유 회장과 김종열 사장에 대한 특별공로금 지급이 최근 논란이 되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김 회장이 특별 공로금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혔으나, 금융당국에서는 격려성 공로금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요구할 정도로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다.

KB금융지주 역시 이날 주총을 열고 당초 국민은행 노조의 반발을 샀던 황건호 전 금융투자협회장 등 6인의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만장일치로 처리했다. 당초 노조와 시민단체 등은 "금투협 고문직으로 남아 있는 황 전 회장이 KB투자증권의 모회사 사외이사로 오는 것은 낙하산 인사"이고 "그간 각종 비리 의혹에 개입된 사외이사들을 재선임했다는 것은 지배구조를 해치는 일"이라며 반발한 바 있다.

하지만 황 전 회장 등 6인의 승인안건이 통과되는 것도 일사천리였다. 사외이사들이 금융사 거수기란 비난을 받고 있는 마당에, 조직 내부에서 강하게 반대하는 사외이사가 선임되는 모습을 보니 노조 때문에 피곤해하는 KB금융지주가 떠올라 아쉬웠다.

금융사들이 '주주들의 축제'라고 불리는 주주총회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단순히 통과의례로 여기는 행태는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주총에서 안건 통과를 선동하고 회사로부터 돈을 받는 일도 공공연한 비밀 가운데 하나다.

이처럼 매번 반복되는 만장일치 주총 역시 국내 금융사의 후진적 지배구조의 영향이 크다. 얼마 전 한 국책연구위원은 "정치권 등 외풍으로 인한 불안한 경영권 승계구조나 설익은 지배구조를 개선시키려면 장기 주주확보가 핵심이다"고 말해 흥미를 끌었다.

장기 주주란 단기성과주의를 멀리하고 장기적 기업 가치를 위해 경영진의 승계와 선임, 평가보상을 모니터링하는 주주라고 정의했다. 단순히 금융사 임원들의 이익보전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주주들이 과연 장기 주주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장기 주주 확보는 금융사는 물론 국내 금융시장 발전의 '밑거름'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금융사들이 장기 주주 확보를 통해 보다 건설적인 논의가 오가는 주총이 하루빨리 생겨나기를 기대해 본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