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노미네이션, 원칙엔 동감 시기는 차후에나
디노미네이션, 원칙엔 동감 시기는 차후에나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3.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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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이양기에 논의 확산 부적절 의견 많아
정치 경제적 안정 전제···대북관계도 감안해야


화폐단위 절하(일명 디노미네이션 Denomination)가 논란이 되고 있다.

경제규모의 확대와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화폐단위의 변경이 필요하다는 한국은행의 건의와 이를 적극 검토할 방침이라는 대통령직 인수위의 입장이 조만간 디노미네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그러나 인수위가 파장을 의식, 곧 바로 원론적 언급이라며 이를 부인함으로써 오히려 혼선이 일고 있다.

이런 혼선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을 비롯해 여러 기관들은 그동안 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따라서 시점이 문제이지 차기 정부에서 본격적인 검토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러나 지금은 정권 이양기인 관계로 당장은 어렵고 적어도 정부가 충분한 여론을 수렴 뒤인 4~5년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디노미네이션은 화폐가치의 변동없이 기존의 화폐단위를 100분의 1 혹은 10분의 1 등 일정비율 만큼 낮추는 화폐단위의 명칭 절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현재의 1000원짜리를 1원, 또는 100원을 1원 등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 경우 물론 새 화폐와 구화폐를 구분하기 위해 화폐단위의 호칭도 변하게 된다. 과거 우리나라는 두 차례의 디노미네이션을 경험했다. 지난 1953년 구권 100원을 신권 1환으로, 1962년엔 구권 10환을 신권 1원으로 변경했었다.

한국은행은 그동안 디노미네이션과 별도로 10만원권 등 고액권 발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으나 만약 디노미네이션 계획이 구체화된다면 고액원 발행은 필요치 않게 된다. 그러나 디노미네이션 추진이 늦어질 경우 한은은 우선 고액권 발행을 먼저 서둘러야 한다고 나설 전망이다.

디노미네이션은 이론상으로는 화폐나 자산 가치 변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즉, 디노미네이션은 소득, 상품가격, 채권•채무액 등 국민경제의 실질변수의 모든 금액이 일률적으로 단위와 호칭만 바뀌는 데 불과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영향을 제외하면 이론적으로는 실물경제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러나 실제로는 실물경제에 일시적인 혼선을 빚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과거 우리나라에서 실시한 두 번의 경험처럼 예금인출 제한, 과세조치 등을 동시에 시행하거나 특정기간 내에 실명 확인을 거쳐 돈을 교환하는 화폐개혁의 형태를 취할 경우에는 실물경제는 물론 금융시장 등 경제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밖에도 디노미네이션은 지하 자금의 노출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통화정책의 효율성을 떨어뜨릴만큼 지하경제의 규모가 클 경우 정부가 채택의 유혹을 강하게 느끼는 정책수단이기도 하다. 1962년의 디노미네이션을 포함한 통화개혁이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의 경제 재편의지에 의해 정책수단으로 선택된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지하 자금이 노출되는 과정에서 상당한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디노미네이션이 단행되면 장점도 많다. ▲거래편의 제고 및 회계장부의 기장처리 간편화 ▲자국통화의 대외적 위상제고 가능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억제 ▲지하 음성자금의 양성화 가능 등을 들 수 있다.

한 예로 1달러에 현재 1천200원 정도 하는 환율이 1달러에 120원 정도로 단위가 줄어들게 된다. 현재 세계 주요 국가들 중에서 대달러당 환율이 천단위 이상인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하면 자국 화폐 가치가 절상되는 심리적 효과를 낳게 된다.

물론 디노미네이션의 단점도 있다. ▲컴퓨터 시스템 변경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비용 발생 ▲새로운 화폐발행에 따른 화폐제조비 및 현금처리 자동화기기 대체•변경비용 발생 ▲회계장부 및 전표의 신규 대체비용 발생 ▲국민들의 불안심리 초래 가능성 등이다.

그러나 디노미네이션의 단점은 대부분 통화 기본 단위 변경에 따른 추가 비용 부담이 주가 되고 있다. 따라서 단기적인 비용 부담을 제외하면 장기적으로는 얻는 게 많다는 뜻이 된다.

문제는 디노미네이션의 여러 장점과 80년대 이래 꾸준히 반복적으로 제기돼온 만큼 충분한 과정의 정당성 내지 당위성이 있음에도 불구, 현재 시점은 적절치 않다는 견해가 많다. 정권 이양기이며 대외적으로는 이라크, 북핵 문제 등 경제의 악재들이 겹쳐있어 불안한 환경이라는 지적이다.

그리고 당국자들이 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국민적 동의와 정치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현재 김대중 정부는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문제로 곤욕을 치루고 있어 향후 통일 경제를 감안한 장기적 마스터플랜 위에 디노미네이션 계획이 수립될 필요도 있다. 따라서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환경이 갖추어진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도입이 가능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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