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대형화와 차별화
금융기관 대형화와 차별화
  • 홍승희
  • 승인 2003.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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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의 수학실력이 세계 제1의 수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수학적 사고가 만연한 듯 하다.

세상만사는 수학공식이 아니다.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게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늘 단 하나의 답만을 구하고 그 답에 모든 질서를 맞추려하는 경향이 매우 강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역사적으로도 늘 원리주의적, 교조적 사회를 지향하며 모든 사람을 정해진 틀 안에 맞추고자 무리한 시도를 해오곤 했다.

실상은 수학 조차도 깊숙히 들어가보면 언제나 1개의 확정된 답이 구해지는 것은 아니다. 현대에 오면서 수학에도 불확정성을 예측하는 카오스 이론이 도입됐다. 분명히 수학의 영역이지만 여기서 답은 확정된 단일 숫자로 된 답의 개념과 차원을 달리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답에 매달려 획일화의 길을 가고 있다. 하나의 답이라고 일단 상정되면 모두가 그 답에 맞춰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증상을 보이곤 하는 것이다.

금융산업정책도 이런 현상에서 크게 비켜서 있지 않다. IMF체제 이후 글로벌경제가 전사회적 화두가 되면서부터 금융기관 대형화도 하나의 정답으로 자리잡았다. 세계적 금융기관들과 전방위 경쟁체제를 갖추자면 대형화가 필수라는 논리다.

물론 그 답이 오답이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개방된 금융환경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든 대형화가 유용하다는 점도 분명하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맞춰 대형은행 한두개 필요하다는 논리도 타당하다.

그러나 국내 금융기관이 모두 대형화만을 추구하는 게 정답일 수는 없다. 21세기 사회를 규정하는 여러 담론들 가운데 하나는 수요자 니즈에 맞추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트렌드도 포함돼 있다. 금융도 이제는 공급자 시장이 아닌 수요자 시장으로 전환, 적응해 나가야 한다는 시대적 메시지인 셈이다.

대형 금융기관의 역할이 있고 그런 대형 금융기관 서비스에 만족할 수 없는 금융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들을 찾아 틈새를 메꿔 줄 중소규모 금융기관들의 몫도 있는 법이다. 규모에서만 다양성이 필요한게 아니다.

금융기관의 성격도, 영업구성도 모든 게 좀 더 다양해져야 한다. 그러자면 정책당국자들부터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관리•통제가 정부의 몫이 아니다. 이제 정부도 행정서비스의 개념을 갖추고 기업이 다양한 사업을 개척하고 개발해 나갈 수 있도록 마당을 펼치는 것을 본연의 임무로 삼는다는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통제하기 쉬운 단선적 구조로는 나라 바깥 세계로부터의 다양한 공세에 순발력있게 대응하기 어렵다. 특히 한국과 같이 시장규모가 작은 나라일수록 유연성, 시장탄력성이 곧 경쟁력이다. 세계시장에서 일종의 게릴라 마인드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요즘 한국 금융산업은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금융허브가 덩치만 키워서 되는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금융기관들, 역할도 다양하고 영업구성도 다종다기한 금융기관들이 고르게 섞여 경쟁하고 협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변화에 국가 전체적으로 탄력적인 대응을 해나가기가 수월할 것이다. 국제사회와 대등하게 경쟁해나가려면 무엇보다 우리 안의 획일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획일주의는 실상 그 뿌리로 파고들어가 보면 무사안일주의, 더 나아가 노예근성에 가 닿는다.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일단 무기력해지고 그야말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무사안일한 생활태도를 수용하게 된다.

기업 역시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다보니 자발적 창의적 사업의욕이 자주 좌절되다 보면 발전적 사고를 하기 어렵고 정해진 틀안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한 치졸한 생존경쟁만 남게 된다. 안되는 부분을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으로 뚫으려 하기보다 손쉬운 로비, 그것도 인맥과 재력을 동원한 불법적 로비로 풀어나가려 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 아직도 광범위하게 남아있는 부정부패의 고리들도 그렇게 형성된 것일게다. 처음부터 부정한 방법으로 사업 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인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저 이리 막히고 저리 막히고 걸리적거리는 것 투성이다 보면 편하게 쉽게 가는 길만 찾게 되는 보통사람들의 나약함이 쌓이고 쌓인 결과일 것이다.

금융강국을 지향해 전진해나가는 현재의 시점에서 업종간 교류, 제휴가 더 원활해지고 합병 아닌 영업결합도 가능해지고 또 물론 기업의 매수 합병도 수월해지다 보면, 다양한 사업영역을 개척해나가는데 장애물들이 제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있는 한가지만 붙들고 열심히 씨름하려는 곳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면 더 힘있는 금융시장을 구축하고 세계와 경쟁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가로거치는 규제만 없으면 신명을 내고 신명을 내면 능력의 120%도 발휘할 수 있는 興의 민족이다. 국민을 믿는 정부, 관리들도 더 자신감을 갖고 변화와 다양성을 수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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