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연기금, 현대판 '봉이 김선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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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양종곤기자]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판 것은 참 유명한 일화다. 주인이 없는 강물을 판 것이니 놀라운 기지다.

그런데 최근 국내 증시에서 비슷한 흉내를 내고 있는 투자주체가 있다. 주인이 있는데도 '제 멋대로'이니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바로 연기금이다.

연기금은 글로벌 금융불안의 기폭제로 작용한 미국 국가 신용등급 강등이 있었던 지난 8월8일부터 12일까지 4조6000여억원 가량 주식을 순매수 했다.

물론 연기금의 공격적인 투자는 분명 명분은 있다. "연기금이 아니었다면..." 이란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연기금은 국내 증시의 '안전판' 역할을 해주고 있다.

더욱이 갈수록 심화되는 인구 고령화와 납부율 하락 문제는 전세계 연기금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다. 기금운용을 통한 수익창출 노력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의 공격적인 투자가 바람직한가는 생각해 볼 일이다.

과거 미국의 캘리포니아 공무원 연금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시절 전체 운용자산의 약 40%인 1000억 달러의 투자손실을 입었다. 이는 77년 역사상 연간 손실로는 최대규모이다. 학계에서는 공격적 투자가 화근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연기금의 방향성은 공격적 투자가 아니라 분산투자가 정답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국내 연기금은 폭락장에 무려 4조원 넘게 쏟아부은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금융감독 수장이 국정감사에서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법제화하겠다는 발언까지 했다. 국민연금의 공격적 행보에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

외환위기 이후 '시장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국내 금융시장의 문호를 활짝 개방하더니 이제와서는 국민연금을 '구원투수'로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기금은 '금융시장 안정화'라는 명분만으로 함부로 쓰여질 수 있는 자금의 성격이 아니다. 국민들의 노후자금이기 때문이다. 

연기금 투자가 과연 국내 투자자를 위한 것인지도 고민해 볼일이다. 연기금은 지난 8월8일부터 12일까지 외국인이 내던진 4조7000여억원 가량의 주식을 쓸어담았다. 결국 외국인이 던진 물량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외국인들의 배만 불린 셈이다.

물론 개인투자자들로서는 연기금의 지수방어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외국인 매도세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경우 자금만 축내는 꼴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같은 연기금의 투자 행태를 바라보는 여론 역시 부정적인 기류가 역력하다. 하지만 금융당국이나 연기금은 귀를 닫은 모양새다.

연기금은 주인은 엄연히 국민이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증시에 구원투수가 아닌 패전투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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