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준법지원인, 共生인가 寄生인가
[기자수첩] 준법지원인, 共生인가 寄生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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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강현창기자] 준법지원인 도입에 대한 논의가 법조계의 '이기주의' 때문에 산으로 가고 있다. 대내외 경제침체 우려로 가뜩이나 경영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는 기업들의 현실적 문제는 논외로 치부된지 오래다.

법조계는 '상장회사에 대한 준법통제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워 어떻게든 많은 변호사들을 상장사에 취직시키느냐에 혈안이 된 모습이다.

지난 달 30일 한국거래소 국제회의관에서는 준법지원인 제도 도입을 앞두고 관련 쟁점을 논하는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사회와 발표자는 모두 로스쿨 교수가 맡았으며 토론자 4명 중 2명은 변호사였다. 경제계에서는 상장회사협의회와 전경련 관계자가 참여했다.

이날 객석은 법무부와 검찰청 등이 운영하는 '법사랑서포터즈' 회원들이 단체로 자리를 매웠으며 공인회계사와 노무사, 법무사, 세무사 등도 저마다의 입장을 대변하고자 자리에 참석했다.

논란만큼이나 토론도 열정적으로 진행됐다. 준법지원인제 적용 대상의 규모와 자격, 통제 범위 등이 쟁점이 되고 있다는 발표자의 설명 뒤에 각 토론자들의 열띤 토론이 오갔다.

논란의 배경은 이렇다. 상장회사가 준법지원인을 한 명 고용하기 위해서는 매년 최소 2억원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만약 사택과 차량, 보조인력, 법인카드까지 내줘야 할 경우 관련 비용은 추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는 것.

이 때문에 경제계에서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부터 제도를 도입한 뒤 대상 범위를 점차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들이 처한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토론자 중 한 변호사는 1000억원과 2조원으로 논의가 압축된 상장회사 자산규모 논쟁을 오히려 확대시키며 '본심'을 드러냈다.그는 자산 규모 500억원 이상의 상장사라면 전부 변호사로 구성된 준법지원인을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준법지원인을 둔 회사만 상장이 가능하도록 관련법을 고쳐야 한다며 정제계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까지 펼쳤다.

결국 고용에 따른 임금문제와 기존 사외이사 제도와 어울릴 수 있는 '큰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철저히 묵살됐다. 애초부터 토론회 자체가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더욱 가관은 토론이 끝난 뒤였다. 발표자로 나온 로스쿨 교수는 발언권을 얻은 뒤 "아까 XXX 변호사님이 말씀하신 부분은 XX법의 규정상 반드시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경제계 쪽의 주장은 XX법의 시각에서 보면 허점이 많아요"라며 토론회를 마무리 지어버렸다.

중립을 지켜야 할 발표자가 법조계의 논리대로 토론 자체를 교통정리해 버린 것이다.

토론 뒤에 이어진 질의응답 역시 '첩첩산중'이라는 말을 절로 떠올리게 했다. 서로 손들며 발언권을 얻은 공인회계사, 노무사, 법무사, 세무사들은 자신들도 법률적인 자격을 갖춘 사람이니 준법지원인 자격이 주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그들이 준법지원인으로서 필요한지 여부와 그들을 고용해야 할 상장회사들의 현실적인 문제는 가장 중요한 문제임에도 '논외'로 치부됐다.

결국 공청회는 법률적이고 학술적인 논리만을 내세워 '나도 한입만'을 외치는 법조계의 볼썽사나운 모양새만 연출된 채 마무리 됐다.

국내 기업들은 내년 4월이면 꼼짝없이 준법지원인을 고용해야 한다. 상장회사와 준법지원인의 관계가 공생(共生)이 될지 기생(寄生)이 될지는 추후 관련 논의의 정상화 여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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