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 외환보유고 논란
적정 외환보유고 논란
  • 홍승희
  • 승인 2004.1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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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무조건 많으면 좋은 줄 알았던 외환보유고가 요즘은 너무 많아 탈이라 한다. 외환보유고가 고갈될 위험에 직면해 결국 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던 불과 몇 년전의 기억이 정책 당국으로 하여금 악착스레 외환보유고 늘리기로 내몰리게 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 달러화의 지속적 약세화와 더불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규모로 인해 적정 외환보유고를 얼마로 봐야 하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일반 가계에서도 절대빈곤 상태라면 수입이 생길 때마다 앞 뒤 안보고 저축에만 매진하게 되고 또 그런 생활자세는 주변의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웬만큼 생활이 안정되고 나서도 계속 돈 모으는 게 삶의 목표인 양 누릴 것을 누리지 못하게 인색하게 살게 되면 주변의 빈축을 사는 것은 차치하고 당장 가족 내에서 반발이 나오고 끝내는 본인도 왜 사느냐는 본원적 회의에 빠지게 되기 쉽다. 그러나 얼마를 벌면 쓰고 살아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누가 대신 답을 찾아줄 수도 없다.
국가 단위의 적정 외환보유고에 대해서도 역시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IMF는 아시아가 한바탕 외환위기의 도미노 현상을 겪고 난 후 단기외채, 국내통화량(M2), 국가위험도 등 몇가지 측량기준을 세워 국가별 적정 외환보유고를 제시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각국 정부의 경제정책에 훈수를 두고 있다. 그런 IMF가 보기에 2003년 말 기준 한국의 적정 외환보유고는 562억 달러라고 한다. 그런데 11월 중 IMF는 한 연구원의 보고서를 통해 지난 9월말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1천억 달러를 넘어섰으니 국가적 자원낭비를 하고 있다고 훈수를 뒀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 보고서를 IMF 공식입장이 아닌 일개 연구원의 개인견해일 뿐이라고 가볍게 일축했다지만 대개 IMF의 개입 방식이 특별한 긴급 상황이 아닌한 개별 국가 국민정서상 반감을 불러일으킬 직접적인 간섭보다는 이번처럼 넌즈시 훈수 두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그처럼 일축하는 것도 정확한 대응방식은 아닐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IMF의 훈수를 무조건 수용해야 할 까닭은 없다. 그리고 재경부측 말대로 IMF 내에서도 적정 외환보유고 기준을 놓고 여러 의견들이 있는 모양이니 정책 당사자인 재경부는 시기와 방식, 규모 등 모든 문제를 잘 살피고 취사선택을 잘 하면 그 뿐이다.
국내에서는 한국채권연구원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우리나라의 적정 외환보유 규모를 951억~1천417억 달러로 추산한 바 있지만 실제 외환 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은행은 그 기준에 그다지 동의하는 것 같지 않다. 외환보유고 유지비용은 국가신용도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비용이라는 한국은행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개방경제에서는 충분한 외환보유고가 경쟁력이 된다는 생각도 수긍할 만하다. 특히나 요즘처럼 전세계에 투기자본이 횡행하며 바람이 울타리를 넘듯 각국의 국경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외환보유고는 보다 넉넉해야 안심하고 국가경영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미국이 현재와 같은 달러 약세화 전략을 지속한다면, 그리고 지금처럼 이웃 경쟁국들보다 빠르고 큰 폭으로 원화 환율이 떨어진다면, 또 경쟁국들 가운데 어느 쪽에선가 견디다 못해 외환시장 개입을 본격화하고 뒤이어 각국이 너나없이 시장개입에 나선다면 우리도 시장개입이 불가피해질텐데 그때 과다한 외환보유고가 장애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지금도 수출품목의 상당 부분에서 확실한 우리의 경쟁국으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이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환율조정에 뭉기적대면서 우리의 수출이 심대한 타격을 받고 있어 정부가 받고 있는 시장개입 압박 수위는 이제 목끝까지 차오른 상태다.
물론 정부가 개입하는 시점을 잡기도 쉽지는 않겠지만 지금같은 미국 달러화와 중국 위안화의 힘겨루기가 계속된다면 산업 붕괴를 묵과할 수는 없을 터이니 머잖아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사용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보니 결국 한은에 발권력 행사를 요구하는 지경이 됐다. 내년도의 팽창 재정을 감안하면 꽤나 아찔한 주문인데 한은이 어떤 답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과한 것은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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