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성장엔진 '서울'의 과부하
묵은 성장엔진 '서울'의 과부하
  • 홍승희
  • 승인 2004.1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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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판결이 요즘처럼 형편없이 취급된 적이 이제까지는 없었던 듯하다. 예전에는 사람따라 다소 못마땅할 망정 그래도 법리에 근거한 합리적 판단일 거라고 믿어주려던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면 이 즈음의 분위기는 헌법재판소가 과연 존재의미를 갖고 있느냐는 근원적 질문마저 쏟아지는 지경이다.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법리를 따지기 이전에 상식과 매우 어긋나는 판결 이유가 다른 법조문도 아닌 헌법해석의 근거가 됐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물론 지역적으로는 저마다의 이해관계가 얽혀 반발할 수도 있겠으나 판결 이유가 설득력을 가졌다면 지금 충청권에서 일고 있는 저항처럼 거센 반감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 성 싶다.

왕조 정치가 비록 외세 침략으로 막을 내렸다고는 하나 그 이후 왕정 대신 민주공화정을 선택하고 민주헌법이 제정된 지가 언젠데 새삼 사라진 왕조의 법조문까지 들먹이며 관습헌법 운운했으니 애당초 설득력을 갖긴 어려운 게 당연했다.

잘못된 사례를 드느니 아니 든만 못한 꼴이 된 것이다. 실상 왕조시대의 관습으로 따지자면야 한 왕조가 다른 왕조로 교체될 때는 의당 수도가 바뀌는 것이 정석이었으니 관습이라면 차라리 대한민국 건국과 더불어 수도를 바꾸는 게 관습에 합당할 일이었다.

이런 시비는 그나마 배부른 타령으로만 들린다. 수도권에 다수의 부동산을 가진 이들 심정이야 다 모르겠고 그렇지 못한 한 서울시민의 입장에서는 지금 한국경제 전체를 감당할 엔진으로서는 이미 과부하가 걸린 서울의 부담을 여러개의 엔진에 분산시키는 지방분권화 정책이 더 이상 미룰 과제는 아니지 싶다.

물론 경제규모가 작았던 시절에는 되도록 집중화시키는 것이 효율적이었을 테지만 이제는 다시 분산시키지 않으면 효율성이 떨어질 지경에 이르렀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본래 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성장과정에서는 집중과 분산을 교차 반복함으로써 성장에 따르는 부작용들을 상쇄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성장기 아이들의 신체도 체중이 느는 시기와 신장이 자라는 시기가 번갈아 나타나며 그 과정에서 정신적 성숙도 이루어지고 차츰 어른이 되어간다. 그 교차 반복에 차질이 생기면 심각한 성장통을 앓기도 한다.

지금 한국 경제는 여러 방면에서 극심한 성장통을 앓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사 부진으로 인해 일종의 변비 증상처럼 온몸으로 독소가 번져가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소통부재의 사회라는 표현이 흔히 대화없는 관계들을 일컫는 데 사용되지만 보다 원초적으로는 물리적 정체로 인한 불통현상에 더 적합한 표현인 성 싶다. 사회적 재화도 특정 계층에 집중적으로 적체되어가며 사회 말단에서는 피의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일부 마비증상마저 나타나려 한다. 이제는 강제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소통을 이루어내야 한다.

그런데 준비된 치료법 중 핵심요법의 사용이 저지당했다.
일단 지방분권화의 핵심 수단을 빼앗긴 정부는 헌재 결정을 수용하는 범위 안에서 어떻게든 분산정책을 살려보려 하지만 그래서는 제대로 탄력을 받으며 변화를 추동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이미 서울의 경제적 흡인력이 블랙홀 수준으로 강해졌기 때문이다.

정치적 파워가 산업`경제적 토대를 끌어당겨 놓으니 그 위에 문화와 교육 등 사회의 모든 역량이 몰려들어 그 핵심인 정부를 옮기며 그 힘을 이용해 여타 부문들을 전국적으로 분산시키자는 것이 행정수도 이전의 당위였다면 그 핵심을 남겨두고 나머지 부분만 분산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물론 몇 개 기관 정도야 어떻게든 지방 이곳저곳으로 나눠 보낼 수 있겠지만 그게 과연 얼마나 지방분권의 효과를 낼 수 있겠는가. 서울 체증현상을 다소나마 치유할 수 있겠는가. 난망한 일이다.

이제 어찌할까. 이대로 서울이 모든 것을 빨아들여 서울을 제외한 전국을 빈사상태로 치닫게 버려두면 서울은 과연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을까.

요즘도 죽은 이전 세기의 이데올로그들이 한국 사회를 농단하는 지경인데 과연 우리에게 미래를 준비할 힘이 남아있기는 한 것인가.

그래도 끝내 한국 사회의 미래를 포기할 수 없어 다시금 미래를 향한 활시위를 당길 대안 마련에 중지를 모을 수밖에 없겠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모두 고양이 목에 방울 달 책임을 서로 미루는 생쥐 꼴은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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