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망령이 무섭다
부동산 망령이 무섭다
  • 홍승희
  • 승인 2004.10.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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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듯 요즘은 금융권도 어디에 대출을 해줘야 할지 난감하다는 소리들이 들린다. 대기업들은 신규 여신수요를 별로 일으키지 않고 중소기업들은 불안하다. 기업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개인`가계에 대해 담보 여력만 믿고 대출을 하기에는 향후 상환능력이 역시 미덥지 않다.
그래서 그동안은 여신금지업종에서 풀린 러브호텔 같은 곳에 적잖은 대출을 했던 모양이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어려워지고 있다는 소문이다. 국감을 통해 밝혀진 바로는 지난 6월말 현재 러브호텔에 대한 대출 잔액이 총 4조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그 러브호텔들이 요즘은 연체를 발생시키며 불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일단 불량채권이 되면 다른 담보대출보다 손실 발생규모가 훨씬 커질 위험이 있다.
실상 아파트 등 살고 있는 자기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일반 가계는 웬만하면 연체를 발생시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또 설사 대출금 상환능력이 안돼 담보물건을 처분하더라도 가치 손실이 그다지 크지는 않다. 주택가격이 폭락한다 해도 절반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니까. 물론 경매로 넘어가면 어차피 별 돈은 안되겠지만.
하지만 러브호텔 같은 경우는 일단 장사가 안되면 여타의 건물들과 달리 담보가치가 토지에만 한정적으로 남아 거래가격 기준으로 대출을 해줬던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큰 폭의 손실을 감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위험은 요즘 성매매 방지법이 발효되면서 된서리를 맞고 있는 각종 유흥업소들이 다 어슷비슷할 터다.
유흥업소 대출은 아무래도 시중은행보다는 저축은행 쪽에서 더 열을 올렸던 모양이어서 그 타격의 정도가 더 심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저축은행들로서는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운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번에는 신행정수도 관련 부동산 투기세력들이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된통 당하고 있다. 헌재 결정의 적합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미 상당부분 진척되어온 사회적 투자, 투기 부분이 모두 실현율 제로의 거품으로 그칠 경우 그 경제적 파장은 현재의 정부`여당이 겪고 있는 정치적 파장을 훨씬 능가할 수도 있다. 부동산 거품이 얼마나 위험한 현상인지는 지난 10년 일본이 겪은 장기불황으로 충분히 학습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거품이 일고 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사석에서 만난 어느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경기를 죽이고 경제가 살아난 나라가 없다고 열을 올렸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처럼 부동산 거품이 위험한 규모로 커질 나라 또한 없을 것이라는 데 한 표를 던져도 좋을 것이다. 물론 세계 경제의 2/3가 주택가격의 거품을 갖고 있다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그 거품도 정도 문제다.
좁은 국토에 비해 넘치는 인구밀도로 인해서 빠른 경제성장 속도를 앞지르며 그 자체로서 부가가치를 생산해 낼 수는 없는 부동산의 가격이 더 가파르게 상승해 거품을 일으키는 현상을 넓은 국토에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를 가진 나라들이 같이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유럽 여러나라의 인구 밀도도 물론 만만찮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경제 구조와 우리는 매우 다르다. 단지 미국과의 친소관계만으로 미국과 유럽이 똑같은 자본주의 체제라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저마다 차이는 있지만 세계적으로 사회복지의 수준이 가장 평등에 가까운 곳에서 불안한 노후를 염려하며 부동산 투기에 이성을 잃고 덤벼들어 과당경쟁을 낳고 그 결과 실체보다 월등이 큰 거품에 감싸여 실가치가 얼마인지를 망각해버리는 사회를 답습할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부동산을 끌어안고 다함께 물에 빠져들 태세들을 보이고 있다. 행여 헌재의 위헌 결정 배경을 서울 강남의 귀족적 기득권과 부동산 가치 유지를 위한 무리수로 폄하하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법리적 판단보다 정치적 판단이 앞서는 헌재의 특성에 미루어 단지 괜한 의심이기만 할까. 이제 부동산은 그 이용가치만큼의 가격이 매겨지는 방향으로 정책도 나아가야 하고 금융권도 그 돈들의 거류처를 마련해야 될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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