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와 경기
금리와 경기
  • 홍승희
  • 승인 2004.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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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악화되는 경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또 금리인하를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재경부의 콜금리 인하 기대를 외면하고 ‘동결’을 결정했다. 재경부 쪽에서는 내심 불쾌할 터이지만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과는 별개로 일단 한은 결정을 ‘존중’한다고 이 부총리가 말했다니 모양새는 나쁘지 않다.
IMF가 ‘금리인하가 현재 한국의 경기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게 어떤 논리, 어떤 근거로 그렇게 말 한 것인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해 잘 모르겠다. 다만 IMF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금리가 내려가면 경기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일반적 원리가 현재의 한국경제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재경부는 그렇게 확신하고 금리인하를 원했을 터이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솔직히 이게 카드정책의 또다른 유형은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다.

금리가 내려가면 기업 자금운용이 원활해지고 가계부채가 과도한 상황에서 가계 이자부담도 줄어들지 않겠느냐 싶기도 하겠지만 그게 영 현실성없는 발상 같이만 보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삐딱하게 보자는 게 아니라 각 경제주체들의 처한 상황이 일반적인 경제이론을 적용하기 어렵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싶다.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할 대기업들은 지금 자금여력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미루고 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물론 자금부족에 허덕인다. 그렇다고 금리가 내려가면 상황이 호전될 기업은 별반 없어 보인다. 콜금리 인하로 직접적인 혜택이 이들에게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미뤄봐서 은행 여신금리가 곧바로 따라 내려 가지도 않을 터이고 또 설사 금리를 내린다 해도 중소기업들이 더 이상 은행여신을 받을 여력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우선 은행 입장에서 담보없이 중소기업에 대출을 해줄 가능성은 거의 제로 수준 아닌가. 웬만한 중소기업들은 장기간 경기 침체로 신규투자 여력은 고사하고 당장의 운영자금 확보에도 허덕이는 판이니 그동안 쓸만한 담보는 다 썼을 터이다. 더 이상 여신확대나 여신금리 인하를 해봐야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일 뿐이고 어찌보자면 그야말로 염장지르는 일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 사정은 일반 가계도 마찬가지다. 지금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는 가계는 실상 소득원을 잃어 생계비 차원에서 빚을 진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과거 부동산 버블이 심하던 시절의 자산 투자를 위한 대출과는 다른 성질의 부채가 지금 가계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소득없는 그런 가정에는 설사 담보가 있더라도 대출해주지 않는 게 현실 아닌가. 물론 이미 받은 대출 이자라도 낮아지면 보탬이 될지 모르겠으나 콜금리 인하의 혜택이 가계에까지 미칠 가능성이 단 1%라도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금리인하는 누구에게 혜택이 될까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요근래 서비스업마저 심한 불황을 겪고 있다고 요란스럽던데 실상 건실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면 경기 침체기에는 우선 서비스업이 타격을 받는게 정상 아닌가.
내수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서비스업은 여전히 호황이라면 그 자체가 비정상인 것으로 보는 필자의 시각이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나마 서비스업이 그동안 호황을 누려왔다면 아마도 여신확대나 여신금리 인하의 혜택은 그들이 가장 크게 받지 않을까 싶다. 재무구조로 보나 담보여력으로 보나 그들이 그나마 신규로 여신혜택을 볼 여지가 있을테니까. 그 서비스업 가운데는 물론 룸살롱같은 유흥업소들도 포함될 공산이 크다. IMF 당시 경기를 살리려고 벤처기업 지원을 강화할 때도 IT분야 기업보다 먼저 냉큼 지원금을 따낸 업종 중엔 목욕탕같은 곳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도 그런 위험은 사방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어설피 금리 인하해봐야 경기회복도 못시키면서 물가마저 놓칠 공산이 더 크다. 정말 스태그플레이션을 부를 생각이 아니라면 정부는 이쯤에서 생각 고쳐먹어야 할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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