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 불안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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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세대란에 이어 이제는 전세 난민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정부는 전세난 대책을 내놨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비난만 자초하고 말았다. 한마디로 대책이 없다는 평가에 직면한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의 일반적인 주거양식의 지향은 전세로 결혼생활을 시작하며 내 집 마련의 꿈을 향해 매진하고 소형 아파트로 시작해 자녀들이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쯤은 중형으로 옮겨가고 그쯤에서 집 늘리기는 마감해 그 집을 노후자금 삼는 것이었다. 중형으로 옮길 때쯤은 대학생 자녀들 학비 뒷바라지와 가장들의 조기 퇴직 등이 맞물리며 더 이상 집 늘리기 행진을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꿈들은 삭아들고 있다. 당장 전세비가 폭등하면서 젊은이들이 결혼의 기초로 전셋집을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부동산시장이 불붙던 시절, 사두면 오른다는 불패신화를 만들어내던 그 때는 전세비가 크게 오르면 조금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라도 내 집을 마련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이제 그것도 여의치 않게 됐다.

부동산 불패신화도 한물 간 터이지만 결혼 연령은 나날이 높아져가고 늦게 출발한 신혼 가정은 곧이어 닥칠 자녀교육비와 머잖아 맞게 될 퇴직문제 등으로 집에 많은 투자를 할 형편이 되기도 어렵다.

뿐만 아니라 평균적인 소득 대비 집값이 너무 비싸다. 전세비를 모아 결혼하기도 벅찬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대학이 이제 대중교육의 단계로 진입해 교육받는 기간은 계속 늘고 있지만 그런 장기간의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와도 취업이 만만찮다. 지난 1월 청년실업률이 지난해 7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정부발표도 있었다. 그만큼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의 취업률에도 거품이 많다. 취직은 했다지만 소수의 직장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직군에서 실질적인 급여수준 하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물가 대비 얼마나 올랐느니 하는 숫자놀음은 별 의미가 없다. GDP의 규모와 개인의 소득 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져 감으로써 개인들은 갈수록 가난해져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쯤에서 그치면 그래도 괜찮다. 개인소득의 분배 과정에서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져가고 있는 게 현재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상위 1~2%는 가난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부자가 되어간다. 그러나 나머지 노동하는 국민들은 월급이 해마다 오른다는 착각 속에 점점 더 가난으로 빠져든다.

실질적인 소득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산업사회로 나아가면 그럴수록 소비는 개인의 선택에서 벗어나 필수적 지출로 변해간다. 쓰지 않고는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생존유지용 지출이 늘어가는 것이다.

이런 국민들에게 전세비가 폭등하면 전세자금 대출 늘려주고 대학등록금 까닭 없이 올라도 원인 찾아 해결하기 보다는 학자금대출 늘려주는 것을 정부 대책이라고 내놓지만 기댈 언덕 없는 서민들의 목을 조르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갚을 능력이 함께 주어지지 않으면 결국 그 빚에 인생을 저당 잡힐 수밖에 없게 된다. 한때 사회를 시끄럽게 하던 악덕 사채업자들의 인체포기각서보다 나을 것이 없다.

그나마 전세자금 대출도 연소득 3천 만 원 이하의 직장 노동자에게나 혜택일 뿐 소득신고 할 건더기조차 마땅찮은 저소득 자영업자나 임시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은행이 불안하게 봐서인지 대출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문제는 나이도 들고 경력도 쌓여 연간 소득이 3천 만 원을 간신히 넘는 이들 중에는 학생 자녀들로 인해 올라가는 물가를 쫒아 저축을 늘려나가기 어려운 처지인 이들이 많다. 이런 경우는 일단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실제로는 주거안정 지원이 매우 절실한 이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부가 하나의 정책을 내놓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런 여러 상황들을 폭넓게 검토하고 그 정책의 영향력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려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부 정책은 늘 그런 고려가, 정책 수용자인 국민에 대한 배려가 기본적으로 결핍돼 있다.

집권 초기부터 국민과의 소통에 특히 문제가 많았던 현 정부 들어서는 더욱 더 그런 심모원려, 심사숙고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초반부터 인상 지워진 강부자 내각의 떫은 구설이 반복적으로 되살아나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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